곽승준의 쿨까당, 일제강점기가 남아있는 군산 다크투어



다크 투어 여행지 전라북도 군산
군산에서 만나는 일제강점기의 흔적들... 수많은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일본의 옛 은행건물




개항 전까지만 해도 작은 포구였던 군산은

일본으로 가려면 좀 돌아가야 하는 위치인데 미곡 수탈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군산에서 실어 나른 것


군산투어 첫번째 장소는 옛 군산세관이에요.
미국수탈의 전진기지였던 일제강점기 군산세관은 전국에서 수탈한 쌀을 군산세관을 통해
일본으로 보냄
식민통치에 필요한 건물을 근대식으로 지은 일본
군산세관건물은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어져있어요.

절충주의란? 과거에 전개되었던 모든 건축 양식을 취사 선택하여 활용한 것.


군산에 아직까지 다양하게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건물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구 나가사키 18은행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그래서인지 지붕도 과장되고
층고도 높은 은행 건물들~


건물 지붕이 저런 일본 투구 모양으로 만든게 아니냐는 썰도 있다고
일제강점기에는 은행 역시 침략의 첨병
일본 은행이 고리대를 통해서 조선 농민들의 재산을 수탈한거에요.
반면 조선에 사는 일본인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제공함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조선은행이면 조선에만 있어야 하는데..

자국 경제 상황을 고려해 식민지에 은행을 설치했던 일본은 식민지 은행 수익을 바탕으로
아시아 침략을 하려는 의도가 보임
금융 서비스의 도구로 보기 어려웠던 당시 은행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이 아닌 유럽에서 전쟁을 치른 일본은 엄처난 전쟁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공장을 건설함
그 과정에서 모자란 쌀을 조선에서 수탈함


축항 기념으로 804가마 쌀을 쌓아놓은 쌀 탑이에요.
쌀을 수탈함과 동시에 좌절감까지 안겨준 일본은 쌀만 수탈해간게 아니에요.

가마니의 우리말은 섬이에요.

일본말 가마스(틈이 나지 않도록 끼우다)에서 비롯된 말이 가마니에요.
학생을 대상으로 가마니 짜기 경진대회까지 개최함


나중에는 농민들에게도 강제로 거둬들여 가장 많이 가져갈때는 1년에 1억 장
한장에 들어가는 쌀의 양은 80kg 이었어요. 1억 장 안에 쌀을 가득 채워 가져간 것.
가져갈수 있는 건 전부 가져갔던 일본

식량, 광물 등 모든 물자를 수탈한 일본은 나중에는 숟가락, 젓가락까지 가져갔음
전쟁물자로 사용하기 위해 온갖 쇠붙이까지 다 가져감...ㅠㅠ

교회의 종까지 수탈을 해가 종이 울리지 않음...ㅠㅠ
원래 쇠로 만든 수저를 썼는데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전 국민이 사용했던 나무젓가락

해망굴은 군산시의 월명산 자락 북쪽 긑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로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 시내를 연결하기위 건설해놓은거라고해요.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이 살던 집이 그집이 바로 군산에 있는 히로쓰가옥으로
당시 군산에 살던 일본인 포목상 히로쓰가 살던 집으로


히로쓰라는 사람이 굉장히 부자인줄 알았는데 아니라고함..
더 부자였던 일본인 지주들은 군산시 외곽에~ 살았다고해요.

시마타니 금고는 일본이 시마타니 야소야가 자신의 농장 귀중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던곳이라고하네요.
조선인들을 수탈한 재산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누렸던 일본 지주들

한국인의 정을 느끼게 하는 다같이 찌개를 떠먹는 문화가 외국인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것이잖아요.
조선시대에선 전혀 찾아볼수 없었던 일이에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가난으로 인해 정착된 습관으로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정신만 잃어버린게 아니라 전통 역시 소실되거나 왜곡된 것.
같이 먹는 문화가 아픔 속에서 시작된거네요.


나가사키 짬뽕!!
군산에 있었던 나가사키 118은행 본점이 바로 나가사키


그 당시 가장 큰 수탈창구 역할을 했떤 인천과 군산
그때문에 군산에서 짬뽕이 대중화됐다는 추측이 가능함


군산의 명물 100년된 빵집의 단팥빵~
빵에 팥을 넣은 것은 일본이 처음 한것으로

군산에 빵집을 차렸던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로는 해방과 함게 일본으로 귀환한 뒤
그 뒤 점원이었떤 한국인이 빵집을 인수함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군산 유명 빵집

해방후부턴 시대변화에 발맞춰 노하우가 쌓였고 100년을 뛰어넘어 살아남을수 있었던 비결이죠.
무척 중요한 시기였던 1910년부터 1945년
일본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빵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요?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근대 문물 중 의도가 있는 것은 부정하되
근대 문물 그 자체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함

군산 두번째 코스는 동국사!!

동국사에는 일본의 사과문이 있다고해요.
2012년 일본의 불교 종파 조동종이 사과문이 적힌 창사문비를 기증함


\

군산 시민들과 일본 조동종 승려들이 뜻을 모아 세운 소녀상으로
일제강점기 역서를 풀어갈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는 장소가 동국사임

공포는 전통 목조건축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받치는 기능과 함께 의장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에요.
한국사찰의 특징이 공포 부분에 화려한 던청을 입히는데


일본 사찰은 단청 없이 어두운색 위주로 함



서까래 끝을 하얗게 칠하는 등 세세한 부분이 한국과 다른 일본 사찰

김영삼 정부때 시행된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때


당시 철거 대상에 포함됐던 동국사는
아픈 역사도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며 스님들이 지켜냈다고해요.
일보인 관광객으로 맞이해 아픈 역사를 알리고 있는 동국사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그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픈 역사를 지우고 싶은 마음도 공감은 됩니다.

<출처: tvN 곽승준의 쿨까당>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