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의 아들 중 추사를 데려간 백부
일곱살 무렵 큰집의 양자로 입적했는데
큰집의 장손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추사
지나가다가 우연히 추사의 글씨를 보게된 박제가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게된 추사
정조때 영의정을 지낸 번암 채제공
영의정 채제공도 알아본 추사의 천재성
엎드려 살피지 못하는 가운데 더위가 심합니다. 몸 건강하신지요?
8살에 아버지한테 쓴 편지라고해요
편지가 보존될수 있었던 이유는 편지여백에 답장을 썼던 친부
자식이 아버지 글씨를 배우지..
비슷한 시기 한글 편지도 곧잘 썼던 정조대왕
당시 한글을 경시하고 삼갔던 선비들 반면 추사는 한글 편지를 통해 아내와 며느리를 배려함 세간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았던 추사
그렇게 청나라 학예의 기초를 닦던 중 드디어 연경에 가게된 추사
당시 청나라의 수도이자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던 연경
무려 약 400명의 학자가 10년간 정리했는데 창고 네곳에서 보관중인 사고전서
수천년 중국 문화 역사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문화 강대국이었던 청나라
반면 청나라 문물을 배척했던 조선
이들을 알아야 추사를 이해할수 있음
선배들이 했던걸 모아서 완성한거거든요
연암 박지원도 동지사로 연경에 갔잖아요
동지사란? 동지를 전후로 청을 방문한 사신임
1년의 시작은 동짓날
당시 호조참판이었던 추사의 아버지
자제군관제도라고해서 외국에 보내는 사신의 자제로 임명한 군관을 말해요
조선이 아닌 다른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함
추사의 스승인 박제가의 연경 방문은 총 네번
당대 중국 최고의 학예인들과 교류한 박제가는 한 중 우정은 시를 타고
호저집이라고해서 박제가가 중국문인 172명과 교류한 시와 편지를 엮은 책이 있어요
2017년 12월 14일에 사드 보복 해결을 위해 방중한 문재인 대통령
그 나라에 어디를 가느냐는 그 속뜻이 있는 거예요
한중이 오랜 친구사이였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던 것
연경을 꿈꾸며 시를 썼던 어린 추사
박제가를 통해 추사를 알아본 중국학자 조강
그리고 추사 인생에 빠질수 없는 두 스승이
완원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어요
이분이 원래 강남 양쯔강 이남지역에 있었는데 북경에 잠깐 일이 있어서 왔다가 만났어요
당시 고문헌을 수집하고 있던 완원이 원나라책인 산학계몽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중
고마움의 표시로 추사에게 많은 책을 선물한 완원
선대가 개척해놓은 것을 바탕으로 청나라의 많은 학예인들과 교류했던 추사
특히 완원을 선생으로 모셔야겠다 해서 완원의 완을 직접따서 완당이라고 했어요
옹방강에겐 손자뻘이었던 24살의 추사
서로 대화가 통해야 가능한 사제의 교류
척하면 척 모든 질문에 막힘없었던 천재 추사
추사 아버지의 호인 유당을 직접 써서 선물한 옹방강
이별을 아쉬워하며 추사의 송별회를 연 중국 학자들
군관의 신분으로 간이 아닌 군모를 썼던 추사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중국 학자 8인이 쓴 시와 추사의 답가가 기록된 한중 우정작품, 추사전별도
연경에서 돌아온 이후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추사
일제강점기 때 경성제국대학 동양 철학과 교수로 재직함
한.중.일을 넘나들며 추사의 많은 작품을 수집해서 추사의 편지 값은 후지즈카가 다 올려놨다고
후지즈카 치카시의 동경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이 조선조에서 청조문화의 이입과 김완당
옛날에는 교수가 되고 박사학위논문을 내는 것이 많았어요
추사 김정희에 관한 후지즈카의 박사논문
물론 청나라 사람까지 포함해서!!
이분이 갖고 있는 자료를 제주 추사관, 과천 추사 박물관에 기증했다고해요
당시 외국여행은 희귀했던 경험으로 기존 유학파들이 외국 문화를 따라하기 급급했다면
추사는 습득하고 재창조, 토착화까지 성공시킴
금석학을 연구해 새로운 경지에 오른 청나라 학자들
진흥왕 순수비를 찾아나선 추사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 비봉에 세운 순수비죠.
조선의 도읍을 정할때 올라와서 무학대사비라고 했었잖아요
무학대사전설은 조선의 수도를 물색하고 있을때 잘못 찾아와 비석을 세웠다는 설
진흥왕 순수비임을 직접 확인함
추사에 의해 밝혀진 지금의 국보 3호 진흥왕 순수비
추사에 의해 발견된 또 다른 유물은
경주 암곡동 산속에 방치됐던 무장사 터
유쌤이 답사갔던 80년대에는 사람의 발길이 끓어졌던 곳이었다고
다행히 밭가는 아주머니가 있어 물어보니
시간을 잊고가라= 오래걸린다.
추사의 발에 걸린 비석 조각
추사 논문의 대표작이 두가지인데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고찰,
진흥왕 순수비와 황초령 순수비 또 하나는 실사구시설!
실사구시란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한다.
이정도밖에 안되는 걸 후대에 알리는게 싫어서
추사 문집에 불태우지 않은 편지들이 많아요
만약 황초령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진흥왕의 발자취를 몰랐을 것이다.
저 글씨는 그 당시의 글ㅆㅣ체잖아요
당시의 글씨체를 알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기도함
역사도 밝히고 글씨체도 공부하고
그래서 중국에서 오자마자 실사구시를 실천한거군요
입고출신
옛것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오다
법도를 떠지 않으면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다.
법도를 떠나지 않는건 입고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건 출신
국제 학계에 뒤처지지 않고 교류한 추사
추사의 삶 속에서 많은 걸 배운 한 대목이 우리가 신문물을 받아들일 때
어떤 자세를 보여야하는가를 그가 보여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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