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136화 모태솔로 19기편. 첫째날! 1화 꽃다발을 든 여자들의 첫인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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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선택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솔로 남녀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남녀 숙소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19번지. 조금전 차에서 직접 꺼내왔던 핫팩 두 박스, 그중 하나를 여자에게 나눠준, 그리고 그 옆에 준비된 상주 특산물 곶감 다과. 저녁을 알리듯 마당에서 바비큐 불을 지피는 누군가.  부엌에서는 순자의 진두지위 아래 파절임이 준비되고 뒤이어 된장찌개까지 숨겨둔 손맛 제대로 발휘하는 중.  마당 한편에서는 바비큐 초벌 중인 영호와 영철.  제일 먼저 영자 옆자리를 차지하는 영수. 옆자리에 앉은 영수에게 거침없이 관심을 표현하는 영자.  영수에게 첫인상 선택을 받았기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수 밖에 없었다고. 알면 알수록 더욱더 궁금해지는 영자의 직업.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 행동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는 영수. 영숙에게 계속 말을 거는 영호와, 상철의 개그에 저항없이 터지는 여자들. 그리고 홀로 고기만 굽는 상철이 신경쓰이는 한 여자. 정숙은 상철에서 크게 쌈을 사주고. 순자에게 쌈을 싸주는 영철. 모태솔로들한테는 이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큰 의미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앞자리도 비어 있고 알고 보면 별 뜻 없이 챙겨줬던 쌈. 영철의 쌈을 지켜본 솔로들은.  영호도 영숙에게 쌈 전달 완료. 현숙이 상철을 챙겨주는 가운데,  네 명의 여자들이 않은 자리에 어쩌다보니 청일점이 된 상철. 말없이 상철의 잔을 채워주는 영숙.  상철이 인기를 독식하던 그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19번지. 자리를 정리하고 재정비차 숙소로 들어가는 솔로들.  방에 들어오자마자 솔로녀들의 시선을 잡아끈 무언가. 꽃다발을 든 여자들의 첫인상 선택. 첫인상이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꽃을 주는 겁니다. 시간은 지금부터 12시까지. 아무도 모르게 꽃다발을 전달하라! 오늘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그녀들의 꽃다발,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한밤 속 고백. 그리고 꽃다발에 숨겨진 마음 뒤로 시작되는 솔로들의 자기소개. 다음 편에서 이젠 나도 사랑을 하고 싶다. 모태 솔로들의 비상이 시

차이나는 클라스, 김경훈, 사진, 순간을 영원으로~


차이나는 클라스~ 여러가지주제로 강의해줘서 넘 좋은거같아요.
요즘엔 매주매주 챙겨보고 있어요.
 
세작품 모두 퓰리처상 수상작임.
언론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악상임
최초로 한국인 사진 기자가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기자, 김경훈

로이터 통신은 1851년 런던에 설립된 국제 통신사로 전 세계 언론사에 뉴스를 제공함.
전 세계에 약 200여 곳의 지국이 있어 총 2500여명의 기자가 활동한다고함.
그중 600여명이 사진기자임.

1999년 졸업 후 한국의 신문사에 입사함. 2002년 로이터 통신 서울 지국에 입사를 했다고
대부분의 취재와 소통을 영어로 해야함. 도쿄와 베이징 지국에도 있었는데 중국어와 일본어도 필수로 해야한다고하네요.

사진부장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통에 잠결에 수상소식을 들게됐다고함.
11명의 사진 기자가 브레이킹 뉴스 부문 수상하게됐다고.
언론인으로서 영광스러웠던 순간이라고함. 장기간에 걸쳐 취재했던 프로젝트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기쁨

촬영 현장들이 다소 위험해보이는데

홍콩 경찰과 100만명 넘는 시민들의 격렬한 총돌현장에서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현장취재를 한다고함.

중남미 난민과 미국 국경수비대의 충돌현장에서 미 국경수비대가 최루탄을 발사.
김경훈 기자가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못브을 동료 사진 기자가 찍은 사진이라고함.
2011년 대형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때도 사고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고함.
방호복이 필수였던 위험한 현장이었음. 방사능 수치검사를 받으면서 취재를 했다고해요.
갖은 위험 속에서도 진실을 파고드는 시선만 있다면 때론 한장의 사진이 강력한 힘을 갖는다고해요.
누구나 쉽게 동영상을 찍는 시대인데 여전히 사진의 가치가 있는걸까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사진은 그 힘을 잃지 않을 것!!
그예로 한 동영상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 장면에서 동영상을 보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주는 설명적인 느낌을 받으셨을 거에요.
당시 현장에서 사진취재를 한 선생님은

그때 포착한 한장의 사진. 양국 정상 간의 냉랭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죠.
사진을 찍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의 배경까지 담아내는 기자의 취재력.
좋은 사진을 고르는 것도 취재의 일환이죠.
사진과 동영상의 주요 역할은 이야기 전달이에요. 영상이 소설처럼 긴 언어라면
사진은 시처럼 함축된 언어라고함. 소설을 더 많이 읽는 세상일지라도 시의 생명력은 사라지지 않듯이 사지만이 갖는 힘은 영원히 지속될 것.

시대에 따라 사진은 변해왔는데 이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시간을 정지시켜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 그 속에 인간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

강렬한 진실을 담아 세상을 바꾼 사진.

아이들까지 희생된 전쟁의 참혹함. 전쟁의 무의미함이 느껴지네요..ㅠㅠ
베트남 전쟁으로 1973년 퓰리쳐상을 수상한 사진이에요.
베트남전쟁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으로 시작되었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국제전 양상을 띠게되었죠. 소위 베트콩으로 불리며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정글에 숨어 작전을 수행함.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고전하던 상태인데
정글에 숨은 베트콩을 소탕하기 위해 식물을 죽이는 고엽제를 살포함.
1000도 이상의 네이팜탄을 투하. 그당시 찍은 영상


민간인 마을에 떨어지는 네이팜탄.
남북 군간 교전이 벌어지던 마을로 마을 사원에 은신해 있다가 뛰쳐나오는 주민들.
그중 심한 화상을 입은 어린아이가 사진 속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달려 나오던 그 아이임.

당시 마을 주민들은 교전이 격화되자 남베트남군의 진지로 도망
남베트남 공군이 주민들을 적군으로 오인함. 주민들에게 네이팜탄을 투하했고 빨리 나와서 목숨을 구했던 소녀. 뒤따르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해요.
당시 사진 기자였던 AP통신의 닉 우트는 띠어나오는 아이들을 찍었는데 소녀가 놀라서 우는줄로만 알았던.

자세히 보니 등에 심한 화상이 있었던...ㅠ 젤리같은 특성으로 불이 붙으면 끄기 어려워 불붙은 옷을 벗고 뛰쳐나온 아이. 얼른 카메라를 놓고 아이에게 달려가

병원 측에 아이를 살려 달라 신신당부를 했고 사진을 인화해 전 세계에 보도를 함.
아군의 오폭에 절규하는 네이팜탄 소녀는 전쟁의 무의미한 잔학성을 보여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내 대대적으로 일어난 반전여론으로 사진이 찍힌 반년 뒤
미국은 1973년 1월 파리 평화협정에서 정전협정에 합의를 함.
사진이 전쟁종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니 진실을 담은 한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껴지네요..
전재으이 공포를 담은 사진이 전쟁을 끝낼 것이란 신념으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셔터를 눌렀다. 

종군기자였던 형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고하네요..ㅠㅠ
그 누구보다 전쟁의 상처를 잘 알았던 닉 우트.

사진속 아이였던 킴 푹은 UN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전쟁중 다친 아이를 지원해줌.
두사람의 인생 또한 바꿔놓은 사진 한장.
한장의 사진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아져있네요.
강렬한 진실을 담아 우리역사를 바꾼 사진이 있죠.

사진 설명이 영어로 적혀있는데 전 로이터통신 사진 기자 정태원 기자가 찍은 사진으로
외신에서는 토니정으로 활동을 함.

사진과 함께 전 세계에 보도를 함.

80년대 광주항쟁과 6월 항쟁등

학생들과 시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공중전화로 암호를 주고받는데
학생들이 오늘 저희행사있다고하면 데모한다는 뜻임.

이런 식으로 암호를 주고받았다고해요.
6월9일 그날도 비밀리에 연세대학교 집회 소식을 들은 정태원기자
서울대학생 고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5개월 뒤 학생들의 시위와 진압이 격화

시위대가 교문 밖으로 진출을 시도하면 전투 경찰이 최루탄을 쏴서 제압함.



또 꽃다운 청년이 죽는구나.. 
무자비한 폭력에 또 한 젊음이 쓰러진 순간. 가장 가까이서 그날의 진실을 담아낸 그의 카메라.
국내 언론에 보도되지 못해 군부의 언론 검열이 있던 시대임.
정작 한국 신문사에는 전달이 안됨. 당시 중앙일보의 사진부장이 비밀리에 사진을 입수해

사진이 보도되고 얼마 뒤 학생들이 사진을 본떠 걸개그림을 만듦.
민주화의 상징이 된 사진과 걸개그림.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된 민주항쟁은 넥타이 부대로 불리는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함.


사진 한장이 바꾼  우리의 역사.
꼭 살려내고자 했던 민주화의 상징이 되어 여전히 사진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죠.
당시 신문에 쓰였던 한장의 사진이 훗날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 된 것.
때론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이 담겨있지만 오해를 불러일으켜 비극이 된 사진도 있죠.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인데
남아프리카 출신 사진기자 케빈 카터의 사진임
굶주린 아이를 독수리가 공격할 것같은 그런데 왜 사진작가는 사진만 찍고 있나
실제로 그런 논란이 많았잖아요.
1993년 3월 이 사진이 뉴욕타임스에 게재되자 전 세계에 일어난 두가지 반향.
반향1. 독수리와 아이가 상징하는 의미를 생각.
뼈가 앙상한 아이는 아프리카의 기근을 독수리는 이들이 맞이할 죽음을 상징.
전 세계가 이사진으로 기아구제 지원에 관심이 높아졌고, 또 다른 반향은
사진 기자에 대한 윤리적 비난.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독수리를 보고도 사진만 찍었떤 케빈 카터를 비난.

퓰리처상 수상한 해에 생을 마감하게 됨

비난 여론으로 죄책감에 시달린 카터.
카터가 살던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으로 정부의 탄압과 흑인의 저항이 거셌던 시기로
폭력과 방화가 난무한 참상을 목도함. 취재중 친구가 목숨을 잃기도함.
스스로 절망적인 삶에 쫓기며 살았던 케빈카터.
그를 더 고통스럽게 한 보도 사진가의 딜레마.
퓰리처상을 수상한 해에 스스로 목수을 끊은 카터.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있어요.


외부인의 접근이 금지됐던 마을로 마을 난민촌에 30분 가량 머물 수 있었던 외신 기자들
접근 허락하되 조건이 전염병이 우려되니 현지인과 접촉금지해야하는 것임.
총을 든 군인이 지켜보던 상황이고 저 상황은 부모가 배식을 받기 위해 잠시 아이를 혼자둔 상태라고하네요. 그 뒤에 우연히 새가 앉은 것임.
독수리가 아이에게 위협을 가하지 못할거란 판단에 사진을 찍은후 독수리를 쫓아내고
딸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카터.
그때는 왜 뒷이야기를 몰랐을까요? 당시에도 이런 설명은 있었지만
이런 비슷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사진을 접하는 우리는 드러나는 이미지만 보고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하는 사진 뒤에 숨은 진실에는 관심 없었던 사람들.
케빈 카터의 딸이 남긴말이 있어요.

사진을 통해 진실이 아닌 오해가 일어난다면 사진의 강력한 힘이 때론 무기가 되기도 해요.
저마다의 시선으로 사진을 보겠지만 올바르게 소비하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보도 사진 기자로서 때로는 사진 한 장 보다 사람의 생명과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함.
사진을 찍으며 확인하지 못한 부분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면 취재가 완벽히 끝나게 아닌 것. 충분한 취재를 거친 후에 사진을 보도한다고하네요.

세계 언론 1면을 장식하며 전 세계가 주목을 했죠.
2018년 캐러밴 난민을 취재하며 찍은 사진으로 캐러밴은 폭력과 빈곤을 피해 미국으로 진입하려는 증미 국가의 이주민 행렬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수천 킬로의 여정을 떠났지만 그들을 막아선 거대한 미국 국경의 장벽.


2018년 11월 세계적 이슈였던 캐러밴 취재팀에 합류를 하게됨.
멕시코에서 티후아나까지 약 2천킬로 여정을 취재했다고함. 
로이터 통신은 국제적 뉴스를 취재할 때 다양한 지국 기자들을 선발해 팀을 결성함.
국적 종교 문화등에 따라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판단하고 보도의 공정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유일한 아시아인 기자로 참여했다고함.
멕시코시티부터 행렬을 따라 취재했는데 고국을 떠난 수천명의 사람들.

이들이 기약 없는 캐러밴 여정을 떠난 이유.
내가족, 내 아이가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미국 국경지대에 도착한 수천 명의 난민.
기대했던 아메리카 드림은 없음.



국경지대에 모인 난민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계획함.
트럼프의 말이 틀렸을 보여주기 위해 모인 시위도중 벌어진 우발적인 사태임
한무리가 국경선을 향해 뛰기 시작함. 수천명이 덩달아 같이 뛰기 시작함.
갑자기 난민들이 장벽에 접근하자 미국 국경수비대가취루탄을 발사함.

아이 손을 꽉 잡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엄마. 맨발에 기저귀만 입은 아이들.
난민 캠프의 텐트에서 생활하던 가족은 5인용 텐트에서 10명이상이 함께 생활을 해요.
바지를 찾을수 없었던 거에요. 임시방편으로 기저귀를 입히고 신발이 벗겨져 맨발로 행진한 아이.

난민 캠프에서 구호품으로 나눠준 옷임 경황없이 무작정 골라 입은 옷.
작은 옷에 그려진 해피엔딩의 애니메이션이 엄마가 꿈꿧던 아메리칸 드림이 아닐까..
이 가족이 마주한 것은 높은 장벽과 최루탄.
빈곤과 폭력에서 벗어날 기회의 땅이라 여겼던 곳이 무자비한 공격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 이들이 처한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 한장의 사진.
안전장비가 배낭에 있었는데 안전장비를 쓸 겨를도 없는 상황임.
중요한 장면이란 생각에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 사진을 찍고 바로 전세계로 타전.
트럼프의 말과는 전혀 다른 현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사진을 보도하며

캐러밴의 모든 것을 알기에는 한자으이 사진으로는 부족하잖아요.
로이터 통신의 11명의 사진 기자가 총 20장을 출품해 퓰리처상을 수상함.

어린 나이로 갱이 된 소년 그 앞을 지나가는 수탉.
이들이 기약없는 캐러밴 여정에 나선 이유는 캐러밴 중 10대 아이를 데려온 부모가 있는데
갱단이 아이가 갱이 안되면 죽인다고 협박을함. 그곳에 살면 갱단이 될수밖에없어 오게됨

과테말라와 멕시코국경을 지나는 리오 수치아테 강인데
거센 물살의 강을 건너는 캐러밴.
사진기자가 물속에 들어가 취재를 함. 잘못하면 익사할수 있는 상황이죠.
이사진의 강렬한 메시지는 아이의 눈이에요.
가야할 곳을 보는 아이의 눈에서 느껴지는 공포.
아이를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아빠의 의지. 때론 위험을 무릅쓰고 때론 길바닥에서 쉬어가며 미국 국경지대까지 도달한 수많은 캐러밴.

미국은 가족 분리 정책을 시행함. 이전엔 체포된 이민자를 가족단위로 구금했는데
2018년 4월부터는 체포된 부모와 아이를 분리함.
부모는 감옥에 아이는 임시 보호시설에 수용함. 소로의 행방을 모른채 갇혀있게된다고해요.
연방법원은 아동인권침해라고 판단한다고하네요.

사진마다 등장인물이 다 다르지만 모든 사진에 담긴 한 가족의 이야기임.
한 평범한 가족이 왜 고향을 떠나게 됐는지 이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임.
하나의 스토리가된 스무장의 사진.


반 이민정책 지지자들의 주장이에요.
세 모녀는 급박한 모습인데 뒤에 상황은 평온하다며..
마치 카메라맨이 연출하는 듯 보이는

반이민 지지자들은 배우를 사서 돈주고 찍은 사진이라고함.
마치 카메라맨을 향해 뛰는 듯 보이는 사람도 정말 그럴듯하게 보인다고.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의 특성때문인데

방독면 쓸 겨를도 없을정도로 긴박했다고해요.
다양한 각도에서 이상황이 포착돼 이후 사진이 진실임이 밝혀졌다고하네요.
이 광경을 높은 곳에서 촬영한 동료가 있는데



사진이 진실임이 밝혀져도 가짜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대부분의 큰 반향을 일으킨 사진에 뒤따르는 진위논란.


김경훈에게 사진기자의 꿈을 심어준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
전설적인 전쟁 사진가라고하네요.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등 20년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기록함.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오프닝 장면이라는 스필버그.

1944년 6월 미군 부대가 독일 치하의 노르망디에 기습 상륙.
미군이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자마자 하루동안 3천명이상이 숨진 전투현장임.
이름 모를 군인에 닥친 전쟁의 공포.
로버트 카파는 전쟁을 취재했지만 그의 사진에 담긴 반전의 메시지.
사진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전쟁의 참상

할리우드 스타 잉그리드 버그만

사랑에 빠진 두사람은 심지어 그녀가 먼저 청혼하자


난 결혼해서 정착할수 없는 사람이오.

가공인물이었다??!!
그의 실체는 헝가리 출신인 앙드레 프리드먼은 파리에서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활동함
무명이라 힘들게 살았던 시절이고

둘은 동료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무명이라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던 찰나
게르다 타로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그녀가 만든 가공인물 로버트 카파.
카파를 미국의 유명 사진가로 소개하며 자신들을 그의 조수라고 속임

카파라는 이름을 빌려 활동한 앙드레 프리드먼.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네요.
스페인 내전에서 출세작을 찍은 카파는

파시스트 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공화군 병사인데 라이프,뷔등 이 사진이 세계 잡지에 소개되며 자고일어나보니 슈퍼 대스타가 됐다고함.
취재도중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게르다 타로.
전쟁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사진기자


연인을 잃고 충격에 빠진 로버트 카파 앙드레 프리드먼.
황폐한 삶을 살던 그는 결국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전장을 누비며 살음.


1974년 한 종군기자 출신 작가가 발표한 책 카파의 사진이 연출됐다고 주장함.
쓸 만한 전투 장면이 없자 전투 장면 언출을 부탁한거라고
쓰러지는 척 연기하는 병사를 초점을 흐리게해 찍었다는 주장.
그때부터 시작된 진위 논란.
인간은 의식이 있다면 넘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손을 편다는 법의학적 소견.
자연스럽게 오므린 손은 고도의 훈련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함.
병사기 이미 목숨을 잃은 순간 찍혔다는 주장.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 도중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은 카파.
죽는 순간까지도 그의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

당신의 사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카파.
피사체와의 물리적인 거리만이 아닌 취재하는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하네요.
그 이야기에 다가가는 것이 진정한 카파이즘이 아닐까..
사진이 없다면 몰랐을 역사의 한 장면. 사진의 중요한 역할이 기록.


19세기말 유행한게 가족사진이잖아요.

죽은 아이와 찍은 가족사진인거에요.

사진속 모두 죽어있는 아이들. 죽은 아이만 찍는 사진관도 존재해요.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게 억지로 눈을 뜨게 하거나 심지어 눈을 그려 넣기도해요.

당시 사진 한장 찍는 비용이 큰 부담인데 요즘은 태어나기 전부터 사진을 찍잖아요.
19세기엔 특별한 날에만 사진을 찍을수 있었던거에요.

첫 가족사진을 찍은 날이 아이가 죽은날임. 지금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사랑하는 아이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사진한장.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도구죠.
사진의 중요한 본질은 영원히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이 투영된 가족사진.

볼때마다 가슴 뭉클해진 사진이 있는데 1990년 발간함
아마추어 사진가 고 전몽각의 윤미네 집인데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는 가족의 일상.
어느덧 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대견한 모습.

어엿한 숙녀가 된딸이 데이트하던날 사진도 있음.

애정 필터로 찍은 수줍은 연애사진

26년 동안 기록한 가족사진.
요즘은 사진찍는 사람이 많아져 하는 질문이 카메라는 무엇을 사야하냐고
좋은 사진을 찍을 장소는?
그에 대한 대답은?

'사랑하는 이를 먼저 찍으세요~'
사진집을 가족에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진에 담아낸 가족에 대한 사랑. 사진이 갖는 가장 본질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모르는 가족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 같네요.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사회의 역사가 기록되죠.

1944년 미군 사진병이 찍은 사진임.
1944년 9월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 납맹에서 일본군과 중국군의 전투가 일어나
일본군이 패한 가운데 네명의 위안부가 생존하고 있죠.
평양의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일본인 관리의 간호원을 모집한다는 거짓에 속아
일본군의 위안부가된 한국 여성들.
일본 우익 세력은  사진이 가짜라고 주장함.
심지어 중국군에 잡힌 여성들이라고 주장함.

위안부 박물관인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거기서 알게 된 사진속 인물의 이야기
사진속 임신한 위안부는 박영심 할머니로 당시 북한에 살아계시던 위안부 피해자.
사진속 임산부가 자신이라며


밝혀진지 오래된 사진임에도 사진의 진짜 스토리를 몰랐던 중요한 역사의 한 장면을
스쳐 지나갔던 자신을 반성했다고함.
2013년에서 2016년에 그러던 중 중국 지국으로 전근을 가게 됐는데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중국의 위안후 피해자 취재를 기획했다고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건강 악화로 인터뷰 중 죽고싶다는 말을 반복하던 얼마뒤 세상을 떠난 쟝 할머니.
어릴때부터 전족을 당해 손바닥보다 작아진 발.

일본군이 쳐들어왔을때  전족때문에 도망치지 못했다고
여성에 대한 억압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산 할머니.


치매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했는데 갑자기 다른사람처럼 분노를 한 할머니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하오 할머니.

집 벽에는 온통 아이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위안부 피해로 아이를 가질수 없었던 하오 할머니는 아이를 워낙 좋아해 커다란 아기 사진을 구해 마음을 달랬다고.
가장 기억에 남고 슬펐던 취재였다고..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정도로 사진속 할머니들 모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잊히지 않도록 기록하고 보존해 그분들이 사과와 보상을 받을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잊혀가는 역사를 기록해 기억하도록 하는 것.
사진, 세상을 바꾼 진실로
시처럼 함축된 언어로
가슴을 울린 이야기로
잊혀간 삶을 역사로

<출처: jtbd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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