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국사3, 단종을 지키려한 금성 대군vs 왕위를 뺏으려는 수양대군.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국제 정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이란 전쟁,  시시각각 변화하는 어지러운 국제 정세.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 

국제 정세의 변화가 도미노처럼 영향을 주기 때문임.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그리고 1897년,  수천 년 한국사 속 사건이 국제 정세에 일으킨 파장.
동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한 왕들의 은밀한 외교부터,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꾼 영웅들의 승부수!
조선의 왕좌를 뒤흔든 대륙의 정세까지.

한국사를 넘어 한, 중, 일의 정세까지 알아본다!

약 1600만 관객을 사로잡은 화제의 영화가 있죠.
왕과 사는 남자.




조선 역사상 최초로 삼촌에게 왕위를 뺏기고 유배를 간 단종.
유배지에서 만난 엄홍도와의 동행을 그리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 왕과 사는 남자. 

영화로 단종을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음. 너무나 안타까웠던 단종의 비극.

단종과 관련된 오늘의 두 주인공., 두 주인공을 통해 영화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임.

좌중을 압도하느 카리스마의 소유자.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스스로 왕이 된 남자. 
왕위를 뺏으려는 자 수양대군,  

최대한 은밀히 수양대군에 맞서 왕을 지키려 한 남자.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며 전혀 다른 길을 간 두 형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 뒤에 얽혀 있는 한중일 동아시아 정세.

만약 중국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수양대군은 왕이 될 수 없었을지도...
한국사를 넘어 동아시아 정세까지 함께봄!

한 지역에도 흔적을 남긴 두 형제의 싸움.
지금도 남아 있는 의미 있는 문화유산부터, 문화유산이 전하는 뜻깊은 이야기까지..!




쿠데타를 일으켜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의 이야기.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예정임.


제 1장 왕실에 심어진 비극의 씨앗.



8명의 대군이 있던 세종, 두 형제의 나이 차이는 9살.




서로를 잘 챙긴 듯한 두 사람의 관계.
타고난 기질도 비슷했던 두 형제, 수양대군은 무에가 출중하기로 유명했는데, 
금성대군도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숙했음. 기질이 비슷한 만큼 함께 사냥도 다녔음.

같은 기질 외에도 존재하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이름까지 같았던 수양대군과 금성대군. 

왜 이름을 같게  지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소리는 같지만  다른 한자를 쓰는 이름이 된 것으로 추측. 

군호로 안평, 임영, 수양 이런 식으로  불렀어요.  이름 대신  군호를 불렀기에 가능했을 것. 

세종이 이름만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형제간의 우애.  아들들 간 우애는 왕실의 안정과  연관되기 때문임. 

조선 오아실은  건국 초기부터 4대 세종에  이르기까지 왕의  계승 문제로  끊임없이 불협화음에  시달립니다. 

왕위 계승 문제로 끊임없이 불협화음에 시달립니다. 




왕자의 난.
1398년 8월.

이방원이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정도전과 이복동생들을 죽인  사건이죠. 

양녕대군이 폐위되는 모습을 지켜봤던 세종.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가족이 분열되는 걸 걱정한 세종. 

그래서 형제간 우애를 더욱 강조했던 것.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의 비극 없길 바란 것. 

세종의 바람처럼 형제간 우애를 잘 지켰던 8명의 대군들. 





왕위 계승 문제가 없어질 만큼,  정통성을 갖춘 후계 구도가 완벽하게 형성된 조선. 

그런데 1449년 12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조선. 

조선 왕실에 전해진 긴장된 소식.  명나라 사신이 조선으로 오고 있다는 것.

명나라 사신단 방문에 조선이 긴장한 이유는?!

황제의 뜻을  전하고 권위를 대변했던 명나라 사신. 




지금의 관점으로는 이애하기 어렵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면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 실리적 외교였던 것. 

그런데  차원이 다른 소식을 들고 조선으로  오는 명나라 사신단. 

조선 왕실을 뒤흔들 중대한 소식은?




1449년 동아시아 최강 패권국 명나라. 

명나라에서 벌어진 전무후무한 사건?

1449년 7월 명나라 vs 몽골 오이라트 의 전쟁이 발발합니다. 




50만 대군을 이끌고 몽골 오이라트 정벌을 떠난 명나라 황제.

명나라 vs 오이라트 전쟁의 결과는?!

오이라트를 제압하기는 커녕,  토목보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명나라. 

심지어 죽군에게 생포되어 포로까지 된 명나라 황제.




명나라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사건이죠.


황제가 오랑캐의 포로가 된 전무후무한 굴욕. 





명나라가 직면한  세 가지 위협. 

1. 공석이 된 명나라 황제의 자리. 

2. 몽골 오이라트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 

3. 오이라트의 명나라 수도 점령 가능성이 높음. 

심지어 조선까지도 여파가 미칠 수 있는 상황임.  이때 명나라가 내린 과감한 결단??





정통제를  상황제로 높이고 새로운 황제를 세운 것. 
정통제 구출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중심을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판단. 

정통제를 이어 황위에 오른 인물은?!




경태제의 정체는 정통제의 친동생임.

유교 질서를 중시하는 명나라는 장자 계승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었고,  심지어 아들이 있었던 정통제. 아들이 황위에 오르는 것이 맞지만,  황제가 되기엔 너무 어렸던 정통제의 아들.

장자 계승 원칙을 중시했떤  명나라.  조선의 국왕으로 인정받으려면 명나라의 책봉이 필요함. 

조선에서 장자  계승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에  명나라가 납득할 명분이 필요 했을 정도임.  


그런데 장자 계승 원칙을 중시하던 명나라가 ..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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