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국사 131화.한국 야구의 역사를 바꾼 첫번째 결정적 장면, 프로야구는 어떻게 천만 관중을 사로잡았나.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야구 역사를 쓴건 광복 이후부터였습니다.

한국 야구의 역사를 바꾼 결정적 장면 1번째..


8.15 평화해방 1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8월 16일 오후에 서울운동장에서 조미대항야구 경기가 화려하게 벌어졌습니다. 





해방 1주년을 기념한 조미친선야구대회입니다.

1946년 3월 18일 조선 야구협회 즉 오늘날의 대한 야구협회가 만들어지면서, 

해방직후 전국 각지에서 미군과의 친선경기를 가진 조선의 야구인들.


한국 야구인들과 미군의 입장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군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야구 활성화에 도움이 되리라 본 야구인들.

연이은 전쟁으로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던 미군.  야구 경기 같은 이벤트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릴 수 있겠다 생각한 거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중단되지 않은 메이저리그.

그만큼 야구에 진심인 나라, 미국.



우리나라와 미국은 야구문화가 다른데, 

1920년대부터 이어져 온 야구 문화가 미국 야구팬들은 경기 자체를 즐기는데, 우리나라는 자기편이 이겨야 즐거운?! 이길 것을 응원하죠.

그런데 사실 전력에서 우리나라는 미군을 절대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국과의 친선 경기를 앞둔 잉거프리센 소령의 특별한 약속은?

우리 미군을 상대로 점수를 내면 1점당 야구공 120개를 드리리다!






1946년 7월 기준으로 서울 중급 주택 가격이 1만 3천원.
한 마디로 집 두 채 값을  주겠다.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점수를 낼 수 있었을까?

결과는 패배.

예상을 깨고 미군과 대접전을 벌인 끝에, 미국 4: 한국 3

야구공 30다스는 360개로 약 9만원입니다. 
공 360개가 뒤바꾼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 



최초의 학생 야구제전, 청룡기.






이때 자금 대출을 위해 은행에 맡긴 담보는?

바로 야구공 30다스입니다. 

그렇게 미군에게 받아낸 야구공이 씨앗이 되어 한국 야구의 꿈나무들이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청룡기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회이고, 청룡기만의 특색이 있는데, 

대회 3연속 우승 시 청룡기 영구 소장.







광복 이후 미군정 시기를 거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야구






텔레비전 중계가 본격화된 바로 그때!

한국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운명적 경기가 열립니다. 





1963년 9월 21일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아시아야구연맹BFA이 주관하는 국제 야구 대회로 1954년에 창설하여 주로 아마추어 대표팀이 참가합니다. 

야구 유망주들로 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한국 야구의 역사를 바꾼 두번재 결정적 장면은?!








한국 대표팀이 5대 2로 일본 팀을 물리쳐 이겼습니다. 


그리고 결승에서 또다시 만난 일본.






1차 리그에 이어 또다시 3대 0으로 일본을 제압한 한국 대표팀.

한일전을 승리로 이끌며 아시아 야구를 제패한 한국 선수들.

이날의 승리는 한국 야구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특히 한일전 경기는 이를 악물고 뛰었던 당시 선수들.
야구로 일본을 이긴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일본이 강한 걸 알면서도 한 발짝도 물러서기 싫었다고.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62년까지 한국 야구는 일본 팀을 7전 7패로 단 한 번의 경기도 이기지 못했던 한국.


그만큼 일본 야구를 이긴다는 건 모든 국민들의 염원이죠. 

그때 당시 선수들이 가졌을 부담감은 상상 이상으로 남달랐을 것. 

실제로 야구 전문가들 역시 오랜 야구 역사를 지닌 일본의 우승을 점쳤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두 차례나 꺾고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던 것






광복 18년 만에 국민들의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이끈 4번 타자는?







감독으로 유명한 김응용입니다. 

1회부터 선제 타점을 기록했고, 8회에는 홈런으로  2타점 추가.

한국과 일본 3:0 김응용의 대활약으로 승리. 야구 감독이 되기 전부터 4번 타자로 유명했었던 김응용.






그야말로 야구 감독계의 GOAT

선수 때부터 슈퍼스타 기질이..!


1963년 아시아야구선수권 우승 후 대표팀은 청와대를 방문합니다. 

한국의 우승을 확정 지은 4번 타자 김응용 소속팀에 황소 한 마리를 보내주기로 약속합니다. 





한국 최초의 조명탑이 세워집니다. 

야구장에 조명탑이 세워지고 어떤 점이 바뀌었나?




첫 번째로는 여름철 같은 경우에 선수들이 경기를 하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야간 경기가 가능해지며 크게 개선된 운동 환경.

야간 경기 덕분에 평일에도 학생과 직장인의 야구 관람이 가능 해졌던 것. 






물리적으로 야구 팬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어 준 조명탑.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여파는 조명탑뿐만이 아닙니다. 

야구의 인기와 함께 대다수 은행에서 야구단을 창단합니다. 






한국 야구 최초로 정규 시즌 제도가 도입된 것. 


은행에 이어 서울시청, 철도청, 한국전력등에서 창단한 신생 야구단이 등장합니다. 
당시 실업 야구 첫 정규 시즌에 총 13팀이 참여합니다. 

정규시즌 도입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한 실업 야구,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오다?








어디까지나 기업 소속의 직원 신분이었던 실업 야구 선수들. 

그래서 정해진 월급 외에는 약간의 추가 수익이 전부였던 실업야구, 그래서 일반적으로 전화하는 편이 돈벌이에 유리했던 것. 

민간 기업 최초로 실업 야구팀을 창단한 기업!






현재 마린스인 일본 프로팀 오리온스를 표방하여 창단된 실업 팀인 자이언츠.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선발하고, 이듬해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업 야구 리그에 참가합니다. 

1975년 창단된 자이언츠 실업 야구팀.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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