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국회의원 박영선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가 된다.



헌정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 여성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최초 길만 걷는 그녀임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그녀를 부르는 수식어 청문회 스타?
거짓말 융단 폭격도  그녀 앞에서는 속수무책임



진짜 센 언니의 이야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고민하는 요즘!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
인간 박영선의 인생스토리


어디서 봣냐고 물으면 청문회에서 봤다고한다고
청문회 덕에 인지도가 상승함.











증거의 출처는 익명의 제보가 있었다고해요.
청문회 당시 SNS 확인 중에


보는 순간 번뜩!!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였는데
결정적인 증거 영상이 된 것!!
달리기 우등생 보좌진에게 영상 복사본 배달 임무를 전달함 단 20분만에 해결했다고


국민의 제보로 위증을 밝혀낸 청문회 명장면임
진실과 정의가 빛을 본 순간이었음!
당시 청문회 이후 느낀 점이 진실과 정의는 늦더라도 언젠가 밝혀진다.

몰랐더라면 제보는 무요지물로 전락하고 사전의 준비가 없으면 잡을 수 없다!



결정적 육성파일을 가지고 직접 찾아왔는데 몸에서부터 긴장감이 느껴졌다고
증거가 가져올 파장으로 본인도 불안했을 것.



몰래 녹음한 것이기에 내부고발을 망설였는데...



사람에게 주는 신뢰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일이었다고
녹음파일을 받는 순간


역사의 순간들 속 나타나는 의인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바로 잡는 사람
흙 속의 진주처럼 숨어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정의로운 의인들
긴장 백배 청문회장임

출근을 할때  신호에 걸리지 않고 정지 없이 쭈~~욱 가는 날에 느낌이 좋다고!
후유증도 존재하는데 청문회가 끝나고나면  밀려오는 우울 증세
사이다 발언에 폭풍 칭찬이 있지만 쓸쓸하고 우울해져요

임무에 충실했으나 뒤늦게 밀려오는 미안함
사람인지라 마음이 쓰이는게 사실인데 청문회를 마친 어느날



너는 학생 때도 그러더니 커서도 불의를 못 참는 구나!
학생이었을대 정답을 오답으로 잘못처리하자 교무실로 찾아와 또박또박 이의를 제기했다고
선생님의 기억속엔 인상 깊었던 영선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청문회 DNA
매사에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그만큼 엄격했던 아버지 고등학교 선생님인 부모밑에서 자란 영선

열정 넘치는 어머니였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를 만나 매사에 조심하며 꿈도 접고 지내다보니
딸만큼은 꿈을 펼치고  자유롭게 살기 바라셨다고해요.


겨우 기회를 잡아 시험을 본 결과 최연소 4세에 합격햇다고해욤!
소프라노 신영옥도

우리나라 최초 흑백텔레비전이 개극했는데 생방송만 존재했음

2년 내내 맹활약을 했다고해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간 방송국 카메라와 마이크 가 있는 무대를 놀이터로 삼으며
자연스레 방송을 즐기고 사랑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래!  부모님 몰래 방송부 활동을 시작함


방송국 이름과 비슷한 학교 방송부 약자 방송부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실제 방송 관계자들과도 활발한 교류
당시 방송제 찾은 PD들


방과후 편지 낭송을 녹음하는 거임 그대 청소년들의 화제 프로그램인 심야라디오


용돈이 두둑해지니까  공부는 멀리하게되고 방송에 올인하던 어느날
굳은 얼굴로 호출한 어머니


그러나 이미 지인을 통해 사실을 알고 계셨던 어머니


거짓말 하는 딸을 보며 속상함에 눈물을 보인 결국 라디오 방송을 포기함
하지만 숨길수 없는 방송인의 본능으로 대학생때 다시 방송부 활동을 시작했다고해요


퐁퐁4중창단 멤버로 활동했는데



요 사진은 무대 오르기 전 대기실 풍경임


쟁쟁한 참가자들 사이에 당당하게 본선 진출




당시는 무명시절이라 무료로 곡선물받음 박영선의 파트는 코러스 였다고해요

당시 TV중계된 경연대회를 아버지가 우연히 보신거예요.
아버지로 말할거 같으면 딸의방은 금기의 공간으로 그야말로 엄. 격. 함



그런데 어느날 벌컥 방문을 열고 문옆에 있던 기타를  부숴버림..ㅠ
더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해요.


어머! 이건 봐야 해! 해서 시험을 봣는데 아나운서 합격함
하지만 아직 넘지 못한 아버지라는 산..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통보를 햇는데

식사하던 수저를 탁 내려놓으시더니


영선에게 백기를 든 아버지


1981년 입사를 춘천으로 발령받음. 하지만 통금시간이 9시 30분임
엄한 아버지 때문에 제약이 많았떤...ㅠ


그래서 서울과 춘천 출퇴근을 시작함 4시에 기상해서 출발
오전 8시 30분에 도착으로 4시간동안 춘천에 도착함 퇴근도 소요시간이  4시간임
하루의 3분의 1을 출퇴근에 소요함


그래서 M본부에 전화를해 지방발령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해 언론인으로서의 인생 2막을 시작함
입사후 어느날 사내 여자 아나운서 기자가 총집합을 햇는데


오디션후 부장님의 소환 메인앵커는 너야!


알고보니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는데 전형적인 미인형의 아나운서. 기자후보들로 추천했던 각 부장님들 하지만 사장님의 완강한 반대로 오디션 영상을 보여드렸더니
박영선을 지목했다고


미국 특파원 출신의 사장님은


한국에도 여성 앵커시대를 만들고 싶다며 저 직원이 적당히 생겨서
앵커가 너무 예쁘면 정보전달이 방해가 된다고 적당히 예뻐야 정보 전달에 용이하다며




군사정권의 언론 검열 시절에 많은 기사가 통제되거나 왜곡되었는데
특히 9시 뉴스는 더 철저히 검열함 영선이 앵커였던 심야뉴스는 검열에서 통제된 소식을 방영햇는데 분량이 많으면 많은 대로 진행함



당장 나와!! 무단 방영으로 경위서를 작성함 그러나 막을수 없었떤 진실의 목소리



정부가 미디어를 장악해 진실에 목말랐던 국민들 그러나 회사에선 골칫덩어리가 됨
사인하고 또 검열 내용을 방송하자 결국 프로그램 하차하게됨.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력 검열된 내용으로 뉴스를 만든 동료 기자들
그런 기자들을 믿고 방영해준 관계자들 모두 한뜻으로 방송을 함
수많은 진실과 정의의 역사는 탄압에 맞선 사람들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1990년 한국과 소련 수교 1년 전에 공산주의 사회와 교류한 첫 신호탄이었기 때문에
서울과 모스크바 위성 생방송을 하게됐고
서울과 평양 조선 중앙 tv 이원 생방송을 하게돼 취재 방북단으로 평양을 방문했다고해요.


이제는 말할수 있는 평양 비하인드 스토리
보안차 감시요원이 늘 따라다니는데 소련은 KGB 요원 북한은 국가안보위부
에서 사전 뉴스 원고 검열을 요청함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자 저항했떠니
9시 생방송 30분전에 스튜디오 문 앞을 막아선 보위부 직원


방송사고가 일어나면 큰일인데 결심을 하고 당신더 지장이 클거라고 한후!
생방송 5분전에 하는 말이


북한의 실상을 올바르게 보도하길 당부하며 생방송 3분전에 스튜디오에 입성을 하고
결국 원고 검열없이 무사히 방송을 했다고하네요.
끝난후 보위부 직원이 하는말


사회체제에 따른 차이를 실감했는데


얼떨결에 번호를 알려줬다고하네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는데 보위부 직원도 남한에 방문함




동포끼리 밥 한번 먹자우! 그러고 보니 이것도 인연이라고 국장 보고 후 부산으로 가서
이산가족 상봉처럼 재회했다고하네요.
비록 체제는 달라도 한 민족이구나! 싶었다고


흑룡강 주변에 한인 생활상을 취재하러갔는데
촬영 금지 구역 중국과 소련 국경을 촬영하다가 발각했는데 숙소 문을 두드리는 조선족


공안이 쫓아온다는 소식! 촬영 테이프 압수 위기였다고 잡히면 영락없이 감옥행임


목단강에서 트럭타고 도망을감 내리고보니 바퀴가 완전 터지기 직전의 그런 차였다고. 
요주의 인물로 낙인돼 북경공항으로 출국이 금지됌.
당시 공항별 연계 시스템 연결이 없을때라 탈출할 방법은 한가지임
하얼빈과 하바롭스크행은 버스나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소련 입국 비자가 필요한 상황임
비자는 당장은 없는데


중국 사람인척 연기를 했는데 그때 외운 생존 중국어가



결국 소련입국 비자를 겟함
하얼빈, 하바롭스크, 니가타, 서울로 들어왔다고하네요. 그래서 한 중 수교후에도 중국에도 못갔다고하네요.


특파원 발탁 계기는 심야 뉴스 앵커직으로 국제부에서 발령을 내는데


그때 얘기한 것이 여성신장, 여권신장을 주장함 여성 사회진출을 위한 방법을 강구했는데


적임자는 누구..? 마침 국제부 담당하고 있던 박영선은 해외 특파원에 알맞은 조건임
제 1호 여성 해외 특파원으로 결정됨



취재할 것을 찾아보니 할리우드가 있어 출입기자가 되려고했는데
영화관련 리포트를 7개 이상 필수고! 전문적인 식견을 위한 까다로운 등록절차가 있다고해요


취재기자가 되니까 영화 시사회 티켓이 쏟아지게 되어
전 세계 영화인의 축제인 미국 아케데미 시상식까지 참석하게 됐다고해요


세계 배우들이 바로 눈앞에 있음



1995년 마지막날 대한민국에 전하는 새해인사



한국말로 인터뷰한 배우도 있다고해요.
가고자했던 길은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접했떤 소중한 경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죄절하지 마세요!!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위기는 기회가 됩니다.!!




oj 심슨재판이 있었는데 당대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 출신인 흑인배우 OJ 심슨이
전처와 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으나 무죄 판결된 사건이에요.

미국 배심원 제도에 관한 취재가 필수였는데 당시 변호사였던 남편에게 전화함.




실례인데 흔쾌히 승낙해줘 무사히 인터뷰에 성공해 서울 국제부 동료 기자들이 사례비를 지급



같이 저녁먹자고해서 특파원 시절 맺은 인연이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고하네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자 많은 변화를 안겨줬던 곳이 LA였다고하네요.


스스로를 원망했던 신인 시절에 초선의원 시절에 말이 헤맸다고해요.
2004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3%고 눈에 너무 튀어 앵커시절에도 소수이다보니
한번 지각하면 매일 지각하는 사람으로낙인찍혔다고
이런게 싫어 부단히 노력했떤 방송국생활인데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임

진심과 다르게 왜곡되어 전해지는 말들로 피할수 없던 숱한 오해와 비난으로 더이상 국회의원을 안할 생각이었는데


2007년 대선 당시 BBK 의혹을 제기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
계속됐던 치열한 공방전으로 남편의 권유로 유학을 결심함 티켓팅까지 했으나... 한통의 전화를 받고 출국을 자제해달라는 출국할 경우 검찰에 통보해달라는 요청으로 결국 유학을 포기했다고하네요.


검찰에서 주시하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게 무슨말인지 몰랐다고해요. 갈등이 깊어지는데



당락에 관계없이 국민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라고
그얘길 듣고 2008년 국회의원 재선 도전을 결심했고 선거 운동기간동안 자유롭게
선거운동 1주일차


냉랭했던 주변 반응이 따뜻한 민심으로 바뀌었다고해요.


용기를 내어 직면했더니 정치인으로서 좋은 자양분이 된 것!
당선 이후 남편에게 닥친 위기가 있었는데 갑작스레 통보된 미국행


자초지종을 설명한 남편




결국 사표를 낸 남편
회사 입장에선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국외로 잠시 피신을 권유했다고해요.


가까운 일본행으로 결심을 하고 졸지에 이산가족 신세가 됨. 몇개월후 안정을 찾아 걱정됐던 아들을


외국에서 사는 걸 싫어하는 아들인데 어쩔수 없이 보냈다고해요.
그리고 일본에서 걸려온 아들의 전화 한통 당시 9살이었는데


엄마의 부재에 어린 아들이 느꼈던 아픔을 듣는 순간 눈물이 흘렀지만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애써 담담한 척함



시간이 흘러 대학입학 때 쓴 아들의 글을 우연히 보게됐는데
글의 첫 문장이



언제나 바빳던 엄마 여전히 계속되는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은 아들



정치인 엄마를 둔 탓에 외로움만 더한건 아닌지...
실제 워킹맘들도 겪었을 마음
일, 가정, 육아 다 해내기는 힘든 현실임



빈센트 반 고흐의 게 두마리란 작품인데 죽기 1년전 작품이라고해요.
작품을 알게 된 계기는 신부님임

작품의 색다른 재해석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함 
그렇다면 나는 복원력이 있을까? 고민하는 영선을 보며 하는 말이



항상 곁에 도와줄 이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누구나 살다보면 힘든 상황이 오는 법
땅에서 넘어진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곁에서 항상 나를 지탱해주는 친구들과 나를 이겨 내 새롭게 일을 시작하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때로는 좌절감을 안겨 실패하는 삶을 살 수 있지만
서로 용기를 주고 보듬어주면 자신만의역사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요?

<출처: otvN 어쩌다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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