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환으로 백발노인이 된 자니 윤 모습에 충격받음
자니윤을 보면 절로 애잔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하지만 늙는다는 건 자연의 순리임
개그맨들의 대선배이자 미래였던 자니윤 세월 지나 외로워 보이는 모습에 후배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자니윤이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였던 시절 약 3년전에 자니윤을 비롯해 국회의원들과 함게한 식사자리에서
두서없던 자니윤의 이야기 지인과 함께 로비로 나온 고영수
그리고선 오지 않아서 지인들이 저사람 기억상실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고해요
치매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접하져 그때 그 상황이 생각났다고
당시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니었을까 추측
자니윤 건강이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자주 가던 헬스장에도 오지 않고 집에가보니 응접실에 쓰러져있던 자니 윤
급히 구조 요청을 한 지인
의식을 회복한 자니윤은 퇴원 후 요양병원으로 이송했는데 재활훈련을 정성껏 도운 전 부인 줄리아 리!
이후 전 부인을 따라 미국행
얼마 전 직접통화했는데 많이 호전돼 사람도 알아보고 대화도 조금씩 가능해졌다고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자니 윤
충격이 곧바로 전 부인에 대한 비난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혼 사실
치매에 걸리니까 줄리아 리 씨가 혹시... 버리지 않았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만큼 충격적이었떤 이야기
첫보도 직후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전 부인 줄리아 리
미국으로 돌아가 끝까지 자니 윤을 돌볼 것이라고 밝혔다고
뇌출혈로 인한 병원비 줄리아 리가 전부 계산했다고해요.
이것이 곧장 기사로 보도됨
이후 방송을 통해 공개된 자니 윤의 근황
자니 윤의 충격적인 모습!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습임
하지만 이혼은 이미 2010년에!했음 그래서 속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임
그당시 남편을 따라 방송국에 오곤했던 줄리아 리!
같이 저녁을 먹을때면 오고갔던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2016년 자니윤의 사연을 다뤘던 아궁이
방송후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다급한 자니 윤의 요청에 어리둥절했는데
자유분방한 미국식 사고를 갖고 있던 줄리아 리의 아들
자니윤은 한번에 터트리는 불같은 성격임
아들의 버릇없음을 훈계하던 중 자니윤이 과격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임
줄리아 리에게 아들은 목숨같은 존재임 결국 부자 간의 갈등이 이혼의 계기가 됐을 것

촬영할 일 있을 때는 부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줄리아 리의 말에 충분히 공감이 된다고함.
밝히지 말아 달라는 두 사람의 부탁
줄리아 리의 반박 인터뷰 중 엉겁결에 공개된 이혼 사실 지인이 보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라고함.
과거는 지금과는 달랐던 이혼이라는 개념 으로 이혼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겼었죠.
아버지 같은 사랑, 아빠 같은 사랑 그런걸 느껴져 결혼했다고 그런 사랑 아무도 못받을거라고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공주같이 해주시고 공주같이 살았다고 저는 그렇게 잘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하는 거라고
가족들에 대한 애정도가 각별한데 일가친척들 모두 도와주며 챙겼다고 미국에서 조카 둘을 데리고 살던 자니 윤은 조카의 앞날을 기대하며 친아들처럼 뒷바라지해주기도했다고
1993년 어느날 갑자기 닥친 비보
어느덧 한국에서는 시들해진 자니 윤의 인기 나름의 노후를 계획하고 집을 장만함
이때 줄리아 리가 자금을 지원해줌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골인함
언제든지 제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자니 윤
일부 잘못된 보도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줄리아 리
더 이상 악의적인 보도는 삼가달라는 당부의 말이 있었다고해요.
자니 윤의 충격 근황 그의 소식에 여전히 뜨거운 반응임
1970년대 미국 유명 MC 자니 카슨의 제안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투나잇 쇼에 34번 출연했다고해욤
미국 방송계 진출의 포문을 열었던 자니윤
1958년 스태프로 일하다 해군 군악대로 입대하고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던 중
단돈 1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갔고 숱한 고생끝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자니 윤
어렸을 때 노래를 굉장히 잘했대요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대학생활을 하며 재즈, 액션, 춤까지 배운뒤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으나 생각보다 빛을 보지는 못했다고해요. 이후 스탠드 업 코미디로 전향을 했고 한 코미디 클럽에서 2년간 노 개런티로 활동하면서 스타 진행자의 밑거름이 된 힘들었던 무명시절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정착함
당대 최고의 유행어였음
애초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하고 싶었던 자니윤은 어쩔수 없이 19금 개그를 주 무기로 삼아

한인방송에 나갈 회사의 광고를 자니 윤에게 부탁햇는데 이를 계기로 친해졌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고해요.
18세 나이차등 여러가지 상황을 걱정했는데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자니윤의 절친이
이종남이 줄리아 리의 사촌오빠였다고해요.

줄리아 리의 생일파티에 사회자에게 불려 나온 자니윤은 나훈아의 사랑을 열창함
먼저 반한 자니 윤이 적극적으로 프러포즈를 했다고해요.
63세의 나이에 드디어 반려자를 만난 자니윤
하지만 공연으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환갑이 넘어서야 뒤늦게 결혼에 골인함
나이 들어 만나도 세대 차가 존재?
당연히 존재하죠! 부부싸움을 하면 각방을 쓰기도 했고 결혼기간내내 워낙 부인을 잘 챙겼다고
2007년 박근혜 대선 후보의 미주후원회 발대식에 관여하고
이때부터 직접 활동한 자니윤
재외선거를 도운 자니 윤
소문으로만 돌던 이야기인데 이를들은 지인에 의해 기자에게 전달된 거임
기자들 앞에서 소문을 일축한 자니윤은 이번에는 한국관광공사 감사직 제안?에 결국 떠밀리듯 제의를 수락했다고해요.
일때문에 원주에서 혼자 살게 된 자니윤은 거디가 스트레스도 더해져 건강이 악화됨
이후 한국에 있던 전 부인은 미국으로 떠나고
퇴직 한달 전 쓰러진 자니 윤 주말에쓰러져 산재처리도 안된다고하네요.
이쯤에서 퇴직하겠다고 두 사람이 결정한 과감한 결단이었지만
자니윤집근처에서 진행된 퇴임식
<출처: MBN 아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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